사용자 도구

사이트 도구


김세한_원우_요약_-_볼테르

차이

문서의 선택한 두 판 사이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차이 보기로 링크

김세한_원우_요약_-_볼테르 [2017/05/13 05:35] (현재)
147.47.110.26 만듦
줄 1: 줄 1:
 +볼테르와 계몽주의 - 불문과 이영목 교수님
 +
 +인문학이 ‘모든 것을 의심하라’는 태도를 가진다면 경영과 간접적으로 연결될 것임.
 +계몽 (Enlightment - 빛, Lumieres – 빛 , Aufklarung - clear하게 함). 한국 명칭 ‘계몽’의 단어선택은 너무 일방적인 가르침에 가까워서 썩 좋은 선택은 아님.
 +18세기: 빛의 세기 (1715 절대왕정 루이14세사망 – 1789 프랑스혁명),​ 철학자(Philosophes)의 세기, 볼테르의 세기(프랑스)
 +계몽주의는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에 걸쳐, 특히 프랑스에서 전형적인 양상으로 펼쳐진 지적 혁명의 시기
 +절대왕정 = 베르사이유 궁 (울타리도 없음. 덤빌테면 덤벼봐, 아폴론관(신과 맞짱)) 프랑스 루이14세 사망 - 맞아들만 왕이 될 수 있음. 그런데 루이14세의 아들이 죄다 죽고, 5살짜리 손자가 즉위하며 섭정/​친정을 하게 되면서 절대왕정의 권위는 해체, 사상가들이 자기의 의견을 자유롭게 발표하기 시작함.
 +
 +절대주의의 세 지주의 붕괴 (Une foi, un roi, une loi – 하나의 신, 하나의 왕, 하나의 법)
 +신: 하나의 신앙에서 여러 개의 신앙으로 – 이신론과 유물론
 +중세는 국가의 존재가 교회의 보호에 그 의미를 갖고 있었음. 봉건영주 체제는 일종의 조직화된 폭력, 정신적 힘을 가진 교회와의 협력 (종교는 왕에게 왕권을 부여함 – 대관식) ​ 따라서 국가권력은 교회의 오른팔. (당시의 ‘파문’은 사회적 종말을 말하는 무서움.) “프랑스는 교회의 맞딸, 프랑스 국왕은 ‘기독교의 왕’임”. 오로지 로마카톨릭만이 진정하고 유일한 신앙임.
 + ​과학에 기반한 유물론 등 완전히 새로운 철학이 등장, ‘기독교 하느님은 아닌 것 같은데, 다른 어떤 원리는 있을 것 같다 (이신론 理神論, deism)
 +왕: 절대왕정에서 국민주권주의로 – le roi thaumaturge,​ 사회계약론 (루소)
 +신앙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국왕. 대관식을 완료한 (성스러운 기름을 머리에 바른) 왕은 특별한 능력(병을 고치는 능력!!!)을 부여받는 것으로 믿음. (연주창 – 왕의 피부병… 왕이 만지면 낫는다는)
 + ​왕권신수설의 문제: ‘이 세상의 모든 권위는 신으로부터 나온다’ 따라서 현재 어떤 탄압을 받든 그것이 곧 신의 뜻 (국민의 저항권을 부정) ​ 이 불합리를 깨기 위해, 내 생명과 안전과 재산을 보호해 주는 것을 권력으로 하고 이 의무를 다했을 때 국가권력을 인정하는 것을 철학으로 함 (사회계약론)
 +법: 상급자의 명령에서 국민의 일반의지로
 +C’est notre bon Plaisir… (이는 나의 큰 기쁨이니라…) 신이 세상을 창조할 때 자신의 의지대로 했듯이, 그것이 섭리이자 법칙이듯이,​ 신의 대리자인 왕의 뜻이 그러한 것이니 곧 법임.
 + ​만지기만 해도 병이 낫던 왕은 사실 인간의 하나이고,​ 국민과의 계약을 어겼을 때는 죽일 수도 있음을 선언하게 됨
 +
 +볼테르 (1694 – 1778)
 +Francois-Marie Arouet라는 본명을 버림 (아버지를 부정). 아버지는 부유한 공증인(부르주아의 핵심) 사실 Voltaire라는 글자는 Le Jeune Arouet의 anagram으로 만든 것. (어려서부터 치아건강은…)
 +청년기
 +루이 르 그랑 학교 (예수회(인텔리)의 훌륭한 고전 교육)
 +첫 번째 바스티유 감금 (루이 15세 섭정에 대한 풍자시로 11개월 간 바스티유 감금)
 +이후 유명세, 사교계의 시인 <​오이디푸스 (1718)>
 +두 번째 감금과 망명 (유명 귀족에 대한 대항 “내 이름은 나로 시작되지만 네 이름은…” ​ 바스티유 생활과 영국 망명 중 망명을 택함)
 +영국 체험 (1726-1729)
 +귀국과 극장 <철학 서한>, 또는 <영국 서한> (1734)을 통해 새로운 문물과 철학을 소개 ​ “구체제를 향해 던진 첫 번째 폭탄” ​ 또 다시 탄압 ​ 독일 (로렌)로 망명
 +시레 (1734-1744)
 +샤틀레 부인 (과학자):​ 뉴튼의 <​프린키피아>​ 번역… 이 사람과의 연애를 통해 볼테르에게 과학적 교양을 전수
 +궁정 체험
 +베르사유 (1744-1747) 친구들이 불러서 국왕의 역사기록관이 됨 (문인이 될 수 있는 최고의 자리). 국왕에게 열심히 간섭하려 했으나, 국왕은 볼테르를 하나의 음유시인 정도로 생각했는데 간섭이 심해지자 해고.
 +뤼네빌 (1747-1750) 낭시, 샤를레 부인의 죽음으로 방황
 +프러시아 (1750-1753) 프레데릭 2세의 베를린 궁정, “북국의 솔로몬”,​ 계몽전제군주 – 볼테르의 영입으로 분위기가 잠시 좋았으나… 역시 권위를 견디지 못하는 성격에 의해 마찰 잦음 “오렌지로 주스를 짰으면 껍데기는 버려야지” 라는 국왕의 우려를 듣고 기타등등 우여곡절에 의해 환멸을 느낌.
 +방황(알자스) ​ 이후… ​
 +페르네 생활 (1760-1778, 제네바공항 근처 – 프랑스와 제네바의 중간지)에 땅을 사서 살게 됨. 스스로를 ‘페르네의 족장’으로 일컬음 (“40명의 야만인이 있던 곳을 1200명의 유용한 일꾼이 있는 곳으로 만들었다”) 철학자의 정치를 직접 실현해 봄 / “유럽의 여관주인”이라고도 불림 – 국왕, 귀족, 명사들의 순례지가 되고, 전 유럽의 제자들과 6000여 편의 서신 교환을 통해 간접적으로 정치와 사회에 참여하면서 계몽주의의 메카가 됨
 +계몽주의를 위한 투쟁
 +칼라스 사건: 프로테스탄트 가정에 있던 마르크-앙투안 칼라스의 죽음(자살?​) ​ 자살은 신성에 대한 모욕으로 해석됨 ​ 아들의 개종을 막은 프로테스탄트 아버지에 의한 타살로 결론한 툴루즈 고등법원 ​ 아버지 차형, 교수형, 화형 ​ 다른 아들 피에르의 볼테르 방문 (억울하다!) ​ 볼테르의 개입과 투쟁 ​ 재심 결과 무죄 판명, 국가 손해배상
 +이후 <​관용론>​ 저술
 +왕의 귀환 (1778) – 전 파리 시만의 환영, 이후 곧 사망 (84세), 1791 팡테옹 이장 (철천지 맞수였던 루소랑 맞은 편에 묻힘), 새로운 지식인 상 (참여적 지식인) 의 확립 (오늘날 사르트르 식의 지식인의 모습이 이 떄 정립됨)
 +
 +<​캉디드 또는 낙관주의 Candide ou l’Optimisme,​ 1759 (이 텍스트의 1장은 매우 중요)
 +여기서의 낙관주의란 그냥 잘 될 거라는 생각이 아니라 ‘이 세상은 최적의 상태로 만들어져 있다’는 개념임. 순진, 천진, 솔직 등의 의미를 지닌 깡디드란 어원적으로는 ‘흰색’. 예로부터 그리스에서는 선거 후보자들에게 흰색을 입혔다고. ​
 +등장인물의 이름
 +Candide (순진덩어리)
 +Pangloss (이 세상의 모든 걸 말로 표현하는)
 +Thunder-ten-Tronck (나무에 벼락 맞은… 따라지 집안)
 +“팡글로스는 가르치기를 … 이 세상은 모든 것이 최적인, 최선인 상태로 만들어졌다고 … “ 이후 캉디드는 내내 이 최적 조건이 모두 부정되는 상황과 부조리, 고생을 경험함. 퀴네공드는 더욱 심한 처지가 됨. 온갖 악을 몸으로 겪게 됨. 퀴네공드(이브)가 겪는 첫 유혹 장면은 팡글로스(뱀)와 연루되면서 실락원에 대한 비유임.
 +계몽주의 전 교회에서 강조하던 3 Concupisceneces 세 가지 탐욕
 +Libodo sentiendi (감각의 욕망)
 +Libido dominandi (지배의 욕망)
 +Libido sciendi (알려고 하는 욕망) – 심지어 교회는 성경을 일반인이 읽고 스스로 해석하는 것을 금하기까지 함. 호기심을 죄악시함.
 +참고: 생 드 니 성당에 가 보시길 – 국왕의 재미있는 (다양한 의미를 부여해서 신비하게 치장한) 유물을 볼 수 있음.
 +
 +계몽주의 이전 왕정도 신비였음 (질문의 대상이 아님). 계몽주의 이전은 교회의 권위, 국가의 권위가 허락하는 한계까지만 호기심을 허용했음. 그러나 캉디드와 퀴네공드는 이 금기를 넘어서는 호기심을 가졌으며,​ 이후 최종적으로 팡글로스의 최적이론을 부정하고 ‘이제 나무를 가꿉시다’라고 말할 수 있는 성숙한 존재로 다시 탄생함.
 +계몽주의는 이렇게 이전까지 당연한 것으로 존재했던 인간 지식과 지성의 모든 한계를 봉인해제하고 폭발하게 만든 중대 사건으로서의 의미를 가짐. 앎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 변화, 호기심이 갖는 진정한 의미의 복권. 계몽주의는 혁명과의 연결로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 지성의 전환이라는 것으로서 중요한 것임. 백과사전은 그 상징적인 결과물 중 하나.
 +
 +Kant의 계몽주의에 대한 comment ​
 +“계몽주의란 인간이 그 자신의 책임으로 머물러 있는 미성년의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미성년(피후견)의 상태한 타인의 지도가 없이는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 원인이 이성의 부족이 아니라 타인의 지도 없이 이성을 사용하려는 결심과 용기의 부족에 있을 때, 그 미성년의 상태는 스스로의 책임인 것이다. 알 용기를 지녀라! 네 자신의 이성을 이용할 용기를 가져라! 이것이 계몽주의의 모토이다.” Sapere Aude! (Dare to know!)
 +
 +수많은 권위자들의 말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체험과 생각, 상상에 의해 알고자 함을 유지하는 것이 원우들에게 권할 만한 생활 자세임.
  
/var/www/wiki/data/pages/김세한_원우_요약_-_볼테르.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17/05/13 05:35 저자 147.47.1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