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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한_원우_정리_-_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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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한_원우_정리_-_논어 [2017/05/20 04:41]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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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더를 위한 논어 이야기
 +중문학과 이강재 교수님 (http://​blog.naver.com/​kjleeok.d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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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논어가 무엇인가?​ 생각해 보자. 우리는 논어에 대해 알고 있는가.
 +질문: 논어가 나온 지 오래오래 되었는데,​ 아직도 논어가 필요합니까?​
 +답: 내가 먹고 살려면 필요하다(ㅎㅎ). 해방이후 논어에 대해 나오는 책은 이제 수효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1945년~2008년까지 300종이 넘었다. 내가 낸 책은 8쇄까지 나갔다. 구체적으로 왜 필요한지는 강의를 들으면서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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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 공자가 자신의 정치사상을 펼칠 때 ‘사상은 좋다’고 하면서도 정작 정치철학으로 삼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답: 대통령 선거 – 현실적인 후보와 이상적인 후보가 있다. 모두 현실적인 사람이기만 하면 발전은 없다. 상상, 이상, 비현실적 가능성의 탐색은 결국 현실에 영향을 준다. 지나치게 이상적인 사람만 있으면 이 세상은 과격해진다. 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는 전쟁이 엄청나게 일어나던 시기다. 공자가 <​춘추>​를 쓴 대상 시대가 춘추시대다. 이후 <​전국>​이라는 책이 집필되는 시기가 전국시대다. 그런데,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나누는 기준으로 주나라 천자의 권위가 먹혔는가 아닌가로 구분하기도 한다. 242년 제국 간의 전쟁이 1200번이나 있었음.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공자의 이야기는 너무도 이상적이었다. 이후 통일된 진나라는 한비자의 법가 사상을 근본으로 삼았다. BC221-207, 단 14년 지속된 진나라의 법가 사상은 서로를 의심하게 했음. 한비자의 법가 사상은 “법(원칙),​ 술(구체적 방법), 세(권위)”의 세 글자로 요약되는데,​ 그 내부를 들여다 보면 ‘믿지 마라’가 주된 요지임. 계속 경쟁해야 함. 이는 오래가는 사회를 만들기 어려움. 조폭사회와도 비슷함.
 +이후 공자의 유가 사상은 지나친 이익, 힘, 무력을 추구하지 않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풍성하게 만드는 역할을 함으로써 지금까지도 생명력을 갖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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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 공자를 성인으로 추앙하는 경향이 있는데, 공자를 성인으로 볼 수 있는가? 현대의 중국에서 공자의 위치는 어떠한가?​
 +답: 평가는 그들보다 위에 있어야 하는 것이라 어려우나 말해 본다면, 공자에 대해서는 미스터리가 참 많다는 것부터가 신비한 존재로 생각되는 요소가 있다. 한나라 무제 이후 신화적 이야기가 너무 많아짐. 이로부터 공자를 성인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발생했고,​ 끊임없는 논란이 있어 왔다. 6경을 경전이나 철학서로 보는 것이냐, 역사서로 보느냐의 관점도 갈려 왔다. 공자는 나에게 있어 성인이냐 아니냐가 중요하지는 않다. 4대 성인… 지역마다 하나씩 있는 것 아닐까. 모두가 공유하는 성인은 없다.
 +중국에서의 공자 – 중국이 변화를 겪을 때마다 논란이 되는 두 가지 코드가 하나는 공자, 하나는 한자다. 아편전쟁(서구와 중국의 충돌) 이전까지의 세계를 보면 중국은 언제나 전세계의 인구 19%, 경제력의 35%를 갖고 있었다. 서양 사신에게 ‘우리나라에 없는 것을 내 놓아 보면 교역을 하겠다’고 말할 정도.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서구사회는 명나라의 해금령(바다여행을 금함)을 틈타 시장(해상교역료)를 장악하게 됨. 이후 아편전쟁 발발. 이후 중국의 고민 (왜 우리가 패했지?​). 이유로 꼽힌 하나가 공자 사상(보수적이다),​ 하나가 한자(너무 어려워서 국민계몽이 어렵다). 이로써 동체서용,​ 양무운동과 더불어 유가 사상을 버리자는 움직임과 새롭게 이해하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한자에 대해서는 로마자화 움직임이 발생 (마오쩌뚱 – 한자를 버리고 알파벳을 쓰는 것이 갈 길이다), 마오쩌뚱 정권에서 살아남은 학자들이 한자를 없애지 않고 간결하게 만들어 쓰는 것으로 종결. 공자 사상에 대해서는 문화대혁명 시대에 공자 비판이 전국적으로 거세게 일어남. 공자의 모든 흔적들을 파괴 (until 주은래의 만류). 이후 개혁개방이 되고 난 중국의 ‘복귀’ ​ 공자와 한자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 시작함. 전국 470개의 공자 학당 (소프트파워 전략),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도덕적 문제의 해결을 유가 사상으로 도모하고 있음(원자바오 총리의 ‘도덕재무장’). 상해 Expo에서도 논어의 문장을 사용. 2011년 중국국가박물관 앞에 공자의 동상이 건립됨 – 뜨거운 논쟁 ​ 9.5m 동상이 어느 날 사라짐 (당 내부의 결정) ​ 후원으로 옮긴 것임 (좌우파 논쟁에서 좌파가 승리) ​ 좌파 시진핑 내각은 마오쩌뚱 사상으로의 재무장을 주장하고 있으나 여전히 공자 학술 대회 후원 등 지원을 계속하고 있음. 전세계의 공자 서적도 중국에 번역하여 모으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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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 중화국가라고 할 수 있는 싱가포르만 해도 관혼상제 개념이 별로 없더라. 조선이 근대국가로 발전하는 데도 유가사상이 부정적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하는데 교수님의 생각은?
 +답: 조선시대에 가장 중요했던 책은 4서. 그러나 가장 중요했던 책은 주희의 주석이었고,​ 예에 대한 논쟁 역시 공자의 말씀이 아닌 주자가례를 중심으로 했다. 조선 혹은 우리나라는 공자 사상의 나라가 아니라 주자 사상의 나라라고 말하는 것이 엄밀하다. 중국에서 관혼상제라는 개념 중 상과 제는 약화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다시 상에 대한 관념은 다시 올라오고 있다. 또한 산둥 사람들은 중국의 다른 지역 사람들과 좀 다른 면이 있다 (술 먹고 실수하는 걸 용서해 주는 지역도 산둥이 유일 – 중국은 이를 받아주지 않음).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군주로 받드는 왕 중 정조가 있는데, 정조는 계몽군주로서의 한계를 너무도 여실히 드러냈고 전세계의 흐름에 관심이 없었다. 군주는 그러해서는 안 된다. 정조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금서로 지정하는 등 한계가 있었다. 중국 상황에 무지한 조선은 이후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되는데, 이 과정에 유가의 책임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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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 사대주의에 관련된 생각 – 시진핑의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었다’라는 설명 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답: 시진핑과 대변인의 말이 갖는 의미는 복잡하고 의미를 많이 갖고 있다. 그들의 말은 결례라기보다는 일종의 메시지다. 천안함 사건에 대해 중국은 ‘참고 버틸 것’을 말하는 등 복잡한 메시지를 보내 왔다. 사드 배치에 의해 중국은 결정적으로 한국에 대한 믿음을 상실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중국에 대한 반감도 강화되었다. 올 여름이 잘 지나가게 되면 정반대의 정국이 펼쳐질 것이다.
 +사대주의는 또 다른 얘기다. 무력 중심의 세계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옛날과 달라진 점이라면 경제적 경쟁에 의한 영향력이 강력하다는 것이다. 지난 정권은 중국에 대한 무지가 너무 심했다. 중국도 북한도 지금은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사대와 조공에 대해 긍정적, 부정적 시각이 있으나 (조공을 무역으로 보고 그 형식을 사대로 취했다는 해석 가능), 지금도 중요한 것은 실리적 외교이다.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음. 중국이든 미국이든 러시아든,​ 그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는 관찰할 필요가 있다. 사드는 그 상징적 의미 때문에, 그리고 그 절차적 문제 때문에 중국을 너무도 불편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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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논어 (修己治人)
 +유가 학문은 핵심적인 요소로 자기 자신을 수양하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남을 다스리는 것임. 즉 리더가 되는 것. 공자의 삶 역시 스스로 40대 전까지 스스로를 갈고 닦고 이후에 중앙으로 나아감. 공자는 중인 출신으로 주나라에서 법무장관/​검찰총장 수준으로 등용됨. 공자의 제자들도 모두 출세함. 당대에도 공자는 실패한 사람이 아님. 중국을 통일한 사상이 아니었을 뿐. 수기치인 = 스스로 하고, 스스로 못 할 때는 타인이 하게 하고, 그게 안 될 때는 후학이 하게 함. 
 +주유천하 - 55세의 나이에 사상의 파트너를 찾아 사표를 던지고 69세까지 중국 전체를 돌며 스스로의 생각을 이해하고 실행에 옮길 군주를 찾음. 수십 명의 제자들과 15년의 여정에 필요한 자금은 방문했던 국가들이 부담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둔 상태였음. 공자가 말로만 떠들었다면 그의 사상은 위대한 것으로 재조명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의 주유천하는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는 강력한 비전과 실행력을 보여주는 위대한 행보이다.
 +논어는 공자 사후 10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려 완성됨. 공자의 사상이 편찬 과정에서 많은 윤색을 거쳤을 것으로 추정됨. 즉, 공자의 본뜻과는 다른 기록도 많음 (자로와의 대화, 자왈 “자로야 너 성질 좀 죽여.” ​ 제자의 기록 “자로는 제 명에 못 죽을 것이다.”) 심지어 진나라의 분서갱유 이후 후한의 복원과정에서 나온 것임. 공자의 뜻이 제대로 기록되었을 리가. 구술로 전해진 판본과, 진나라 시대에 숨겨졌다가 나중에 재발견된 판본이 섞이기도 함. 따라서 현재의 논어는 ‘짬뽕’. 18세기 중국에서 논어의 분석을 다시 했음.
 +공자는 누구에게 무엇을 말했을까 – 군주, 귀족, 리더의 후보들에게 군주로서,​ 리더로서 가야할 길, 리더로서의 덕목을 말하고 있다. 여기에 논어를 읽는 이유가 있다. 논어는 군자(君子)의 개념을 군주의 아들에서 덕을 갖춘 리더, 지도자로서 개념 재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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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仁)
 +사랑을 베푸는 것, 그러나 내리사랑임. 리더가 베푸는 사랑. 실천덕목은 忠(최선을 다하는 모습)과 恕(타인과 나를 동일시하는 마음 – 기소불욕,​ 물시어인)
 +예(禮)
 +조화. 개인의 내적인 조화 + 개인윤리와 사회윤리의 조화. 형식을 말하는 것이 아님. 형식적 요소인 예법은 변할 수밖에 없음. 변화된 환경에서 새로운 세계를 이해하고 본질에 충실한 것을 따를 뿐임. 리더가 변화를 먼저 인식하고 앞서 가서 기다려 주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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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가 생각하는 이상적 인물: 성인군자 (수기치인을 완성한 내성외왕)
 + ​대안으로는 中行之士 (성인을 찾기 어려운 대안)
 +“중행지사를 얻어 일을 도모하지 못할 경우에는 狂狷之士(광견지사)를 얻어 일을 추진하겠다”
 +적극성과 무모함을 다름을 강조: 의욕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고, 조심스러우나 치밀하게 준비하고 끝내 완수할 수 있는 인간형이 이상적임.
 +공자가 싫어하는 인간형: 鄕愿(향원:​ 마을에서 착하다고들 하는 사람) 그저 좋은 소리만 하고 있는 자 (“덕을 도둑질하는 자”). “사람은 좋은데…” 누구와도 다툼이 없으나 중간만 가고 복지부동하는 자. 이것이 “사이비(似而非)” – 비슷하나 아닌 놈. 이 놈이 진짜 나쁜 놈. 세상이 나아지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
 +자신의 한계설정을 경계해야:​ 염구 왈, “선생님 말씀은 알겠는데 역부족…”,​ 자왈 “역부족인자는 중간에 폐할 수 있다. 하지만 너는 이미 선을 긋고 있구나.” 자신에게 불가능한 것을 스스로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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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가 리더에게
 +1. 좋은 사람을 닮아 가자. 견현사제언,​ 견불현이내자성야.
 +훌륭한 사람을 닮아가려는 노력 속에서 성장이 가능함. 끊임없이 배우는 자세가 중요함.
 +정말로 큰 일을 하는 사람에게 배우고 또 키워줘라.
 +2. 사람들이 찾아오게 하는 리더십. 근자열, 원자래.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멀리 있는 사람을 오게 하자.
 +3. 즐기면서 살아가자.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
 +즐기면서 행하는 사람의 미래는 밝다. 특히 리더가 자기 일을 즐겁고 적극적으로 해야.
 +4. 나라를 망하거나 흥하게 하는 말 (노나라 임금 정공과의 대화)
 +한 마디 말로 나라를 흥하게 할 수 있는 거 있나요?
 +그런 거 없지만 찾아 보면… 위군난, 위신불이. (서로 어렵다는 인식을 하게 되면 더 잘 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됨. 모두 자기 자리를 어렵게 여기면서 노력하라.)
 +한 마디 말로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는 거 있나요?
 +그런 거 없지만 따져 보면… 여무락호위군,​ 유기언이막여위야. (너무 좋아요 다들 내 말을 따르니 안 되는 게 없어요, 따위의 인식 – 현재에 만족하면 조직은 망함. 조언을 해 주는 보좌관이 없는 순간 망하는 것.) 소통의 자세에서 구성원의 비전과 실행을 이끌어낼 것. 일방적 소통이란 있을 수 없음. 소통이란 서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사례: 당태종과 간언을 서슴지 않았던 위증의 이야기, 그리고 당태종을 감화시킨 황후의 이야기 – 나중 태종은 고구려에 패하며 ‘위증이 있었다면…’)
 +참고서적:​ 교수님의 ‘논어’ – 우리말로 가장 편하게 씌어진 번역서임을 자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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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업 후 한 마디: 중국이 가장 원하는 것은 ‘현재 상태에서 안정적으로 발전해 가는 것’. 제일 싫어하는 것은 ‘중국을 포위하는 것’. 중국은 바다로 나가는 출구를 갈구함. 14개 내륙 국경 협상에서 중국은 모두 양보함. 그러나 바다에 대해서 중국이 갖는 자세는 다름. 고립을 피하기 위한 강경 자세. 그러나 사드는 미국 중심의 MD 체제, 한일 정보협정과 아울러 중국을 둘러싸는 전략의 하나로서 중국을 진정 위기감 갖게 했음. 심지어 전 총리의 중국 방문 및 화평 제스처 후에 귀국 직후 사드 배치 결정한 것은 극도의 배신감을 느끼게 했음. 중국인들은 일본이라는 나라가 싫고 일본인은 좋아했고,​ 한국은 한국인이 싫지만 한국은 괜찮은 느낌을 갖고 있었음. 이제는 한국 자체에 대해서도 혐오감을 갖게 되기 시작. 침착, 냉정의 자세가 아쉬움. 강대국의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명확히 파악하고 실리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함.
  
/var/www/wiki/data/pages/김세한_원우_정리_-_논어.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17/05/20 04:41 저자 147.47.10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