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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한_원우_정리_-_퇴계와_율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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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한_원우_정리_-_퇴계와_율곡 [2017/06/17 02:23]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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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덕(明德)과 박학(博學),​ 재승(才勝)과 후덕(厚德) - 퇴계(退溪)와 율곡(栗谷)
 +철학과 허남진 교수님 (동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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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경(居敬),​ 덕성(德性) – 퇴계 이황
 +궁리(窮理),​ 제도(制度) – 율곡 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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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간단히’ 문제제기만 하겠다. 해답은 술자리에서(?​) 천천히 찾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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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德과 理(才)의 갈등 혹은 섞임에 관하여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철학자가 돼라” 현실의 욕망에는 맞지 않는 말이다. 배도 부르고 철학도 높기를 바라겠지. 하지만 일반적으로 볼 때 덕과 재는 쉽게 공존하지 않는다. 서울대에서 전인적 교육을 하라는 말을 들을 때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재가 뛰어나나 덕이 부족한 사람을 덕이 높은 사람이 잘 리드하는 것이 더 이상적인 형태가 아닐까. 그렇다면 서울대는 재기가 뛰어난 인재들을 더욱 재기가 뛰어나게 만들고, 사회로부터 천천히 얻어지는 덕이 높은 인재가 이들을 잘 포용하여 사회를 만들어 주는 게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재주가 있는 사람이 겸손하다면 이상적이겠으나,​ 그러기가 쉽지 않다. 재주 있으되 겸손한 사람으로 꼽자면 성직자를 들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 아니면 도 식으로 극단적인 경우는 없다. (등소평, 혁명의 시대, 소련으로부터 레닌의 동상이 모두 없어진 – 모택동의 동상 대해 어떻게 할까요, 라는 질문에 등소평은 “그는 공칠과삼(공7과3)이다” 라고 하며 모택동의 잔재를 일소하는 것을 막았다. 공9과1 정도의 사람은 성인의 반열일 것인데, 굳이 찾아 보자면 고 이태섭 신부를 꼽겠다. 나의 모교인 경남고에 지난 대통령의 동상이 아닌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 것은 큰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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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계-율곡을 논하기 위한 배경 이야기
 +우리나라 화폐에는 유일하게 ‘옛날 사람’이 들어 있다. 한국은 현대사에서 찾아내 실을 만한 사람이 없었다. 건국의 주역으로서,​ 혹은 현존하는 국가 사상의 기반이 되는 사람으로서 공통의 동의를 받는 사람이 없었다. 아무튼 그리하여 뽑은 제 1의 인물은 반론의 여지가 없이 세종대왕이었다. 따라서 가장 많이 통용되는 화폐인 100원에 모셨다 (지금은 10000원으로 가셨지만). 제 2의 인물은 역시 위대한 영웅 이순신.
 +이제 남은 1000원과 5000원에 실린 퇴계와 율곡. 이들은 잡지 ‘개벽’의 시절 최남선 등이 조선의 얼을 살린다는 취지로 위대한 인물을 꼽는 과정에서 선별되었다. 위대한 종교 사상가로는 원효 (그러나 기독교인이 대통령인 상황에서 지폐에는…),​ 그리고 위대한 철학자로서 이황, 위대한 재상으로서 이이 등이 꼽혔다.
 +조선의 정체성이 확립되는 시기는 1500년대 초부터 임진왜란 전까지였다. 이 시기에 이황, 이이, 이순신, 유성룡은 대략 시기를 겹쳐 생존했고 서로 알고 있었다. 이황과 이이는 나이 차이가 있었으나 활동시기는 서로 겹쳤다. 이순신의 형인 이요신은 부모에 의해 안동으로 보내져 퇴계의 제자가 되었다(그러나 일찍 죽었다). 동생인 순신도 형을 이어 공부를 시작했으나 잘 되지 않았고, 18촌 친척인 율곡에게 보냈다. 율곡은 기초가 부족함을 지적하며 문신으로의 길을 만류하고 무과를 권했다. 무인으로의 시작이 28세. 어쨌든 이리하여 영웅의 시작. (이후 이순신이 급한 보직변경이나 환경 변화에도 뛰어난 성공을 거두게 된 것은 초년의 글공부가 도움이 되었으리라.) 이순신이 선조의 의심을 사 위험에 처했을 때 그를 구해 준 것은 유성룡, 이요신의 동학이었다. 이렇게 네 사람은 여러 인연으로 얽혀 있다.
 +이 시기, 퇴계와 율곡의 두 사람은 조선 철학(유학)의 기틀을 마련했다. 즉 조선의 정체성을 만들었다. 물론 그 두 사람의 사상은 살아온 과정만큼이나 서로 달랐다 (자세한 내용인 인터넷 참조^^). 또 하나, 이 시기에는 무오사화(史禍),​ 갑자사화(士禍),​ 기묘사화(士禍),​ 을사사화(士禍) 등 50년 간 4번의 큰 격변이 있었다. (조선시대 관료의 능력은 정보의 신속한 수집과 판단이었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작문 실력이었다. 작문실력이라면 영남의 성리학자들. 지방에서 올라온 (순수한) 신진 관료들의 눈에는 모든 것이 마땅찮았다. 이에 유교적 원리원칙 대로의 삶을 강조하던 그들은 매우 엄격한 기준을 주변에 적용했다. 이것이 이념적 인간의 전형이다. 이러한 이념의 충돌이 (비록 간신의 싸움으로 욕을 먹긴 하지만) 드러난 것으로 사화를 해석할 수도 있다.) 이렇게 네 차례의 사화를 겪은 후 조선은 유림의 ‘최종 승리’에 의해 유교사상에 의해 지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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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교적 사상의 저변
 +궁극의 목적을 갖는 다른 신앙사상들과 유사하게,​ 유교의 목적은 ‘도덕과 스스로의 일치에 의한 성인이 되는 것’이다. 공자가 70이 되어서야 마음 속의 욕구가 규범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말한 바를 보면, 스스로 성인이 되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유교는 스스로의 성인됨을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남이 성인이 되기를 강요하는 철학이라 해석할 수도 있다. 유교는 타인에 대한 (사회적인) 도덕적 간섭이 강한 사상이다 (이것이 극단적으로 표출된 것이 청문회인지도 모른다. 공무원에게 성인이 되기를 강요하고 있다). 율곡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양생체조를 했다. 양반이라면 갓을 쓰고 외출하는 것이 기본이었는데,​ 옆사람과 닿지도 못하고 고개도 마음대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집에 오면 집어 던졌을 것이다. 그게 유교의 한 표상일 것이다. 나의 사적 영역과 외부에 보여지는 (이로써 타인에게 강요하는) 모습은 분리되고,​ (나는 제대로 되지 않았을지언정) 남들이 모두 성인이면 그것이 지상낙원이 될 것이다, 그리고 성인이 통치를 하면 잘 될 것이다, 라는 사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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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계와 율곡의 서로 다른 사상
 +성인, 도덕이 충만한 리더를 키우기 위해서는 교육이 중요 ​ 퇴계는 서원을 세워 열심히 교육. 천인심성합일지도 등으로 대표되는 과거의 사상을 부정하고 4단(상위체계의 도덕적 욕구, 도덕적 감성)과 7정(하위체계의 감정적 상태)에 대한 독자적인 체계를 세웠음. (理와 氣 간의 체계적 결합에 의한 통제와 발현, 4단에 의한 7정의 다스림 등.) 사도바울이 정리한 현상과 심성과의 관계와도 유사. ​ 68세 성학십도 집필.
 +율곡은 평창의 말직 아버지, 그리고 그와 사이가 썩 좋진 않았던 ‘현명한’,​ 그리고 강릉의 부유한 친정을 둔 어머니 간에 태어났다. 강릉에서의 강력한 조기교육,​ 그리고 파주에서의 초년… 승승장구,​ 학문적 욕구도 계속 왕성. 율곡은 4단의 실체는 없고, 7정의 표현양식이라고 주장했다. 4단은 욕구가 아니라 앎의 대상이고,​ 인간의 실체 안에서 7정이 선하게 혹은 악하게 표출된다고 주장했다. 동일한 7정의 표출에 대해 인간이 어떻게 대응하는가 (예: 수업시간에 졸고 있는 학생들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따라 4단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상황에 따라 어떻게 대응하는가를 정밀하게 설정하고 그것에 따르느냐 아니냐를 가지고 도덕적인가 아닌가를 확인하게 된다. 이를 통해 궁리, 무실역행 등이 강조된다. ​ 48세 성학집요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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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계의 시 – 술이 없으면 즐거움도 없으니 / 술이 있으면 바로 마시네 / 한가한 틈 타 바로 기쁨 누리니… (매우 정서적인 면을 강조, “술잔에 담긴 한 조각의 달” 마음속 도덕을 계속 키우면 그것이 예가 됨)
 +율곡 – 37세 황해도 관찰사, 이후 이조판서,​ 병조판서… 초고속 승진… (37세 시절 어느 술자리에서 그를 접대한 기생 유지, 그의 관사에 찾아오다 – 이후 그의 심정을 시로 남겼는데,​ “… 정신을 차려 보니 내 마음은 가을 강에 떠 있는 차가운 달…”, 도덕에 내 마음을 비춰 보고 옳으냐 그르냐를 판단하고 있음. 이성적이며 예를 우선함. 예를 계속 키우면 마음의 도덕이 잡힘)
 +우계 성혼의 평 “퇴계와 친한 바 있어 그의 글을 보는데 세 줄씩 척척 읽히더라” ​ 율곡의 답 “나는 늘 열 줄씩 읽었는데…” 천재는 천재의 스타일과 세계가, 덕인은 덕인의 스타일과 세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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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
 +덕과 재의 비율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은 청자의 몫이려니. (그러나 생긴대로 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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