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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_요약_김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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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_요약_김세한 [2017/04/29 02:15]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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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훈 교수님 – 메이지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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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쿠가와(에도) 시대.
 +에도=도쿄
 +에도시대는 유교 시대가 아님. 도쿄에는 토쿠가와막부,​ 도쿄에는 천황.
 +조선통신사가 가서 ‘누가 왕이냐’고 묻기도 함. 메이지 유신은 그 물음에 대한 답. ‘천황이 왕이다’
 +(지금의 연호는 평성-쇼와-타이죠-메이지,​ 아키히토-히로히토-XX히토-
 +히로히토 천황이 아픈 4개월 동안 ‘1억 총 자숙’ 미디어 전체 오락 중지, 카라오케 중지, 서거시 츠키지 시장 폐장 (날 것을 먹을 수 없다). ​ 이토록 민폐라 아키히토는 생전 황위 계승 추진.
 +천황은 성이 없다. 막부 주인에게도 성은 천황이 내려준다. 법률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인간임. (경향신문 컬럼 검색해 볼 것) – 일본이 어떤 나라라는 것을 알려주는 사건.
 +사무라이가 집권하던 시대. – 글로벌스탠다드가 없었음. 족내혼. 지금도 좀 있음 (말은 안 하지만). 남녀관계의 자유로움,​ 상업의 큰 발달. (조선과 정말 대조되는 상황 – 조선은 상업을 그리 억압했음에도 경제규모가 제법 – 산업혁명 이전까지 G20 안에 들어갔음. 인구도 정조 시절 1500만명, 일본 3000만 – 영국보다 많았음. 유럽 top 3 수준 – 탁월한 농업기술,​ 탁월한 분배기술(균산균분 – 배곯지만 배 아플 일은 없도록 – 지나친 성장은 부의 편중, 사회의 안정을 해친다는 철학에 기반함))
 +일본은 불교전통이 지배하고 있었음 (지금도 일본은 90% 이상이 화장) 조선통신사가 방문했을 때 그들은 주자학(성리학) 학풍이었고 (신 유교 – 동아시아의 새로운 유동적 사회현상을 설명한 혁신적 측면이 있었음, 그 혁신성에 의해 오래도록 살아남음),​ 그들이 받은 인상은 ‘무기가 많다 (조심하자 – 메이지유신 폐도령 전까지 모두 칼을 차고 다녔음), 도로가 많다(상업 발달 vs. 조선은 길을 크게 닦지 않았다. 상업에 의해 유동성이 증가하고 적군이 쳐들어왔을 때 진입로로 사용되기 때문), 인구가 많다 (3000만명,​ 조선의 2배 – 한국은 1940년대 들어서야 3천만), 도시가 많고 발달했다 – 성과 인공탑 (성하정 castle tower – 전국 봉건영주마다 하나씩. 유명한 일본 도시들은 모두 이렇게 세워진 쥬오카마치(?​)였음 ​ 18세기말 전세계에서 도시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됨). 반면 조선은 양반이 도시가 아닌 시골 깊숙히 자기 땅을 갖고 자연과 벗하고 있음. 시내에는 격이 낮은 사람들이… ㅠㅠ 안동소주는 안동의 서리들이 먹던 술임. 양반들은 정종 빚어 먹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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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키요에를 보자 – 자연과 사투를 벌이는 인간의 모습. (조선의 화풍과는 다름)
 +현대 일본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모두 토쿠가와 시대에 만들어짐. (조선의 전통이 모두 조선 후기 17세기 무렵에 만들어진 것처럼) 이전까지의 문화는 전혀 달랐음 (이전까지가 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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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쿠가와 시대의 정치상황 – 군정 300년
 +군사조직으로 민정을 행함. 여론 무시, 상서가 없었음. (반면 당시 조선은 여론, 상서, 정치참여율 등이 전세계 top이었음 - 21세기 한국에서도 비슷함… 사실은 지나침) 일본, 중국에서는 ‘민심’이라는 개념이 잘 없음. 게다가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도 잘 이해하지 못함.
 +조선 ​ 사림. 산림(정부에 있지 않은 사림 – 우암 송시열. 관직에 없어도 정치를 좌우), 유생/​유림 (수백 명의 연명상서 파워. 사간원, 사헌부 등 언로 반영의 책임을 지진 직원(언관)들이 다 유림 후배들임 – 강력한 간언으로 왕을 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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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19세기초 변화
 +학교 급증, 교육 폭발의 시대. (통신사들이 왔을 때 맞장을 뜨는 인문학(유학) 실력) ​ 정약용은 유교지식인의 정치진출이 크게 일어남을 보고 더 이상 전쟁이 없을 것으로 오판 (메이지유신 이후 달라졌는걸) 사무라이들이 학교에서 유교 공부를 하게 됨  유교학습그룹의 정치화 (사무라이에서 士가 됨. 인텔리 사무라이 – 히토 히로부미 등), 하급무사들이 정치적 참여 (상서, “공의여론”의 시대, 공론정치의 탄생 vs. 조선은 그 시점에 오히려 정치적 억압을 통해 정치적 활력이 떨어지기 시작)
 +존왕사상(유교영향)천황의 부활 (쿄토에서 도쿄로) – 쇼토쿠태자의 화신으로 생각 (메이지유신 주인공들이 보기에는 국가원수를 무당/신 보듯 하는 것은 합리적으로 생각하지 않음) ​ 천황의 단발, 서양식 의복(군복),​ 수염 기름, 칼을 참(주술사적 이미지에서 무기를 든 절대군주의 의미) ​ 무력을 가까이 하기 시작. 천황의 사진을 전국에 배포, 행차시 국민들이 서서 국기를 들고 천황의 실체를 받아들임,​ 일본과 스스로가 하나가 되도록 함. 근대국가의 특유한 현상 – 국민의 힘을 국가의 힘으로 사용함. 성의 부여, 주민등록번호의 부여, 통제… 국민의식의 부여, 국민의무교육을 통한 국민으로서의 의식 주입. ​ 대한독립만세 역시 동일한 맥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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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적 측면 – 지정학적 위치
 +매우 크고 인구가 엄청난 섬나라. 대륙과의 거리는 딱 좋은 (침략당하기엔 멀고, 문물전파에는 좋음). 비옥한 토양. 온화한 날씨. 지진만 없으면.
 +영국 – 프랑스와 33킬로의 도버해협. 일본은 후쿠오카까지 130킬로. 대마도까지 60킬로. 동중국해는 크고 험해서 25퍼센트가 난파. (장보고는 10퍼센트까지 줄임. 그래서 대박) 동해 역시 넓은 바다. 발해 지역에는 유사 이후 거대 정권이 세워진 적이 없음. 남쪽으로 태평양은 평화로운 시절. 유일하게 한반도는 자신들의 목에 들어온 칼 또는 주먹과 같음. 그러나 문물 역시 한반도를 통해 들어옴. 백제. ​
 +(중간에: ‘의식의 신체화’ 전화받으러 나갈 때의 어쩔줄모르는 행동)
 +한반도 930회, 일본 2회의 외침(여몽연합군,​ 아니 몽고의 침략… 그 때도 카미카제가,​ 이후는 맥아더. 모두 국지전으로 끝남. 열도 전체를 뒤집는 전면전이 2천년 역사 상 한 번도 없음).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는 최악. 일본이 정말 특수한 케이스가 될 정도임.
 +따라서 외압에 대한 민감도가 매우 높음. (한국에서의 북한의 영향은 일본에서의 지진과 비슷한 거라는 교수님의 이야기) ​ 러시아 쇼크 (from 사할린)
 +일본의 탐험대 파견 to 사할린 (민간 조직 후 2차에 걸쳐 샅샅이 조사 – 비슷한 시절 김정호의 조사 건에 대한 정부의 자세는?​) ​ 이후 홋카이도 개발. 지도의 보급 (정보의 확산). 러시아에 대한 과장된 위기감 및 경계의식 (정약용의 오판, 신숙주의 유언… ‘일본과의 관계를 살펴라’)
 +지금의 아베 총리도 대포동 미사일 및 납치에 대한 강력한 비판 및 반발을 통해 국민적 지지를 얻음.
 +일본은 러시아 대비를 위해 에도만 운하 사업을 전개 (조달을 빠르게 하기 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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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편전쟁의 영향 (1840년대)
 +청나라 – 변방 오랑캐가 또 분탕질을 했다. 본격적 위기감은 청일전쟁 이후. 또 하나의 교역요구를 위한 소요로 생각.
 +조선 – 당시에도 중국은 세상의 공장이자 중심. 조공무역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취하고자 함. 안정적인 중국과의 외교가 중요. 중국은 무역상으로는 이익이 없으나 안보상의 이유로 교역을 실시.
 +일본 – 나가사키에 있는 네덜란드 측(영국식민지)의 정보 획득. 영국에 의해 각색된 정보의 수집 (영국이 중국을 깼다. 청의 굴욕적 패배다. 영토도 할애했다). 마카오-나가사키 항로를 통한 영국의 에도로의 침략 가능성에 대해 전국적 위기감 조성. 아편전쟁의 정보가 과장된 형태로 시골 곳곳에 퍼짐. 이후 30년만에 성공한 것이 바로 메이지 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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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50년대 큰 저항 없이 개항
 +쇄국-개국의 가로축, 개혁-보수의 세로축.
 +존왕양이파,​ 대원군 (개혁쇄국),​ 위정척사파(보수쇄국 – 당시 너무 강했다!),​ 민씨세력,​ 막부보수파(보수 개국 – 해외와의 조약 체결), 일본 존왕양이파의 이동/​토막파 수뇌부, 막부개혁파(막부보수파의 자기혁신 – 쇼군시대의 종말), 개화파, 독립협회 (개국개혁 – 조선에서는 세력이 너무도 약했다. 김옥균, 박영효… 20~3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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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nA) 사카모토 료마 역시 중급무사로 힘이 약했는데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인가?​ (30살에 암살당하긴 했지만) ​ 이들을 지원하는 세력들이 전국에 정말 많았다. (개화파와는 달랐다.) - <​제국의 아침> <​료마전-NHK대하드라마>​ 한번 보시기를.
 +아편전쟁의 정보확산의 예에서 보듯 정보확산의 통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정치적 의식은 약한 이유는 무엇인가? ​ 일본은 그 떄 반짝, 다시 군부가 집권하고 태평양전쟁이 진행되는 등 국민적 정치의식이 성장할 기회를 잡지 못했다. 한국의 정치의식은 세계적으로 매우 높다고 봐야 한다.
  
/var/www/wiki/data/pages/내용_요약_김세한.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17/04/29 02:15 저자 147.47.108.22